왜 우리는 불편한 사람에게 마음을 쓰게 될까
나는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 어울릴 때 불편함을 느껴도, 관계를 끊기보단 나 자신을 억눌렀다. 심지어 그 사람이 나를 상처 주었더라도, 나 스스로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이유를 만들어줬다. 그러다 보니 결국 불편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신경 쓰게 되고, 더 잘 보이려 애쓰는 이상한 패턴이 생겼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늘 감정적으로 흔들렸다. 무심한 말에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고, 아무 말도 없던 날엔 ‘내가 뭘 잘못했나’ 스스로를 탓했다. 이성적으로는 알았다. 이건 건강하지 않은 관계라는 걸.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나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마치 어떤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그 사람의 기준에 맞추려 했다.
그 집착은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마음은 이미 불편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내 행동은 계속 그 반대로 향했다. ‘나쁜 사람’이 되기 싫었고, 거절을 못 하는 나 자신도 답답했다. 그러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자꾸 들렸다. “이 관계는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불편함을 무시한 채 관계를 유지했던 시간
한때 나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더 잘하려고 애썼다. 그 사람이 나에게 무례한 말을 해도 웃어넘겼고, 내가 불편하다는 표현은 끝내하지 못했다. 마음이 상해도 괜찮은 척했고, 뒤돌아서야 울 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랐고, 나를 오해하지 않길 바랐다. 그렇게 계속 맞추다 보니 나라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이 관계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속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상대는 나를 함부로 대했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하려고 애썼고, 그 안에서 내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감정을 계속 억누르는 일은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진심은커녕, 피로감만 쌓여갔다.
그 사람과의 대화가 끝나면 언제나 허탈감이 남았다. ‘이번에도 말 못 했네.’ ‘또 그냥 웃어버렸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관계를 깔끔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상처를 참는다고 관계가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걸.
집착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순간
하루는 그 사람과의 대화가 끝난 뒤 유난히 마음이 무거웠다. 무심하게 던진 말 한마디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밤새 뒤척이며 생각했다. "나는 왜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질문을 거듭하며 깨달았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잃고 싶지 않았던 거였다. 그제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다음 날, 나는 그 사람의 메시지에 빠르게 반응하지 않았다. 일부러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연락을 미루고, 꼭 필요하지 않다면 만남도 줄였다. 처음엔 불안했다. 내가 틀린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은 점점 편안해졌다. 어쩌면 그게 내가 스스로를 지키는 첫 번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서히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줄었다. 예전 같으면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했겠지만, 이제는 그냥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관계를 끊은 건 아니었다. 다만,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연결을 유지했다. 그렇게 거리를 둔 이후, 나는 스스로를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집착 없는 관계에서 느낀 편안함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참 단순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진심이 통하고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 오래 연락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에도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나는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인간관계의 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의 '깊이'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집착은 결국 나의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거절당할까 두려운 마음,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싫은 마음이 모여 관계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감정들을 인정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세상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들과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결론: 건강한 거리 두기는 나를 지키는 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각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조절되어야 한다. 무조건 가까워지는 것이 좋은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일은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지름길이었다.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는 데에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착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눈치를 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과만 에너지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일상은 훨씬 따뜻해졌다. 이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관계를 붙잡지 않는다. 관계는 억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어져야 의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누군가는 나와 맞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는 나를 불편해할 수도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다. 나는 더 이상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와 감정이 통하고, 마음이 편안한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하려 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니까.
불편한 사람에게 집착하며 나를 잃어가던 시기를 지나, 거리 두기를 통해 진짜 나를 되찾은 이야기. 건강한 인간관계는 억지가 아니라 편안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