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았을 때 우리는 흔히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끝난 건 말 뿐이고, 마음속 감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과거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사과했지만, 나는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 사과는 끝을 말하지만, 용서는 시작이었다. 이 글은 내가 왜 사과보다 용서가 더 어려웠는지를 되돌아본 이야기다.
사과는 있었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와의 갈등은 아주 작고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는 내 감정을 무시했고, 말과 행동으로 큰 상처를 남겼다. 시간이 지나 그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사과의 말은 분명했고, 행동에서도 후회가 느껴졌다. 나는 그 사과를 받아들였고, 겉으로는 예전처럼 행동하려 애썼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상처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날의 말이 떠올랐고, 웃음 뒤에는 경계심이 자리 잡았다. 그가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서하지 못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과와 용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과는 관계를 위한 문턱이지만, 용서는 마음속 벽을 허무는 일이다.”
왜 나는 용서하지 못했을까?
나는 내 감정을 수없이 되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끌고 있을까?", "왜 마음이 풀리지 않을까?" 그 사람은 잘못을 인정했고, 분명히 노력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진심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내 감정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용서는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그 상처가 단지 '사건'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존감과 감정 깊숙한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순간의 고통을 쉽게 넘길 수 없었고, 사과로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음을 절실히 느꼈다.
감정은 논리보다 느리게 움직인다
머리로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도, 그가 후회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감정은 이성과는 다른 속도로 흐른다. 논리는 나를 설득했지만, 감정은 설득되지 않았다. 마음의 시계는 내 기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용서를 강요했던 나 자신에게도 지쳐 있었다
사과를 받았으면 빨리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억압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용서는 결국 또 다른 가면일 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용서는 타인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내 감정을 마주하는 일이다.”
마음이 움직인 어떤 순간
시간이 꽤 흐른 어느 날, 우연히 그의 뒷모습을 보게 됐다. 예전 같았으면 괜히 불편했을 그 모습이 이상하게 평온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모든 게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감정의 색이 조금 옅어져 있었다.
용서는 완전히 잊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더는 그 감정에 머무르지 않았다. 용서란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새로운 감정으로 다시 바라보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조금씩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진심을 이해하고 나를 놓아주는 시간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잘못했고, 나는 상처받았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잘못이 그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도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용서는 상대가 아닌 나에게 자유를 주는 일이었다
용서를 선택한 순간, 나는 마음속 무게를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더는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지 않았고,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줄일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이유로 용서를 결정하게 되었다.
“진짜 용서는, 나 자신을 가두던 감정을 풀어주는 일이었다.”
관계는 회복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는 어색하지도 않았고, 그를 피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용서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자’는 약속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선택이었다.
용서는 화해가 아닌 정리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용서를 관계 회복과 동일시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때로는 서로에게 더 이상 상처 주지 않기 위해, 관계를 이전보다 건강한 거리로 유지하는 것도 용서의 한 방식이다. 나는 그 방식을 택했다.
지금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전의 나는 사과만 받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심 어린 사과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감정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야 진정한 용서가 가능하다는 걸.
용서는 감정이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다
억지로 내리는 결론이 아니라, 감정이 다다르는 곳. 그 자리에 도달하기까지는 사람마다 다른 시간이 필요하고,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나는 그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사과는 말로 가능하지만, 용서는 감정으로만 완성된다.”
결론: 용서는 상처를 안고 나를 지키는 선택이다
나는 사과를 받은 후에도 쉽게 용서하지 못했다. 그 감정은 부끄러운 것도, 틀린 것도 아니었다. 상처가 깊었기에, 마음이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 감정을 솔직히 마주했고, 시간이 지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용서는 더 이상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괴롭히던 감정을 내려놓는 일이었고, 상처 속에서 나를 지키는 선택이었다. 이제 나는 천천히 용서하는 법을 배운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