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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관리하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것

by vin82world 2025.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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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관리’ 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한때 나는 인간관계를 ‘관리’ 해야 한다고 믿었다.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잊히지 않도록 존재를 드러내며, 불편한 순간이 와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지혜로운 인간관계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을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내 안에는 점점 피로감이 쌓여갔다. 그렇게 나는 인간관계라는 무게를 짊어진 채, 점점 ‘함께’ 있다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친밀함을 숫자로 계산하고, 마지막 연락 날짜를 기준으로 우정을 측정하는 방식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머릿속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챙긴 거지’ 하고 계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관계가 점점 목적이 아니라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인간관계는 과연 그렇게 유지하는 것이 맞는 걸까? 진짜 가까운 관계는 꼭 그렇게 ‘관리’해야만 지속될 수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은 결국 나를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끌었다. 인간관계는 왜, 어떻게 맺는 걸까?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관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관계는 ‘관리’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시간 그 자체라는 사실이었다.

관계를 수치처럼 다루던 나

나는 예전부터 관계에 있어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몇 명과 연락하고 지내는지, 누가 나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는지, 단톡방에서 얼마나 자주 언급되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이 관계의 지표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행동에 과하게 민감해졌고, 내 행동 역시 그들의 기대치에 맞추려 애썼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실망했고,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반대로, 나 역시 누군가의 안부를 챙기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탓하며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노력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피곤함이 나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마음은 딴 데 있었고, 즐거워야 할 자리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내 진심보다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고립감을 느꼈다. 많은 사람 속에 있었지만, 정작 함께 있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있었다.

함께함의 의미를 느낀 전환점

변화는 작은 계기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와 짧은 커피 한 잔을 나누게 되었다. 평소처럼 안부만 주고받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최근 가족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 역시 내 마음을 터놓았다. 준비된 대화가 아니었기에 더 진심이었고, 계획되지 않았기에 더 편안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느꼈다. 관계란 그렇게 우연히, 자연스럽게, 때론 어색하게라도 함께하는 ‘시간’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우리는 몇 달, 몇 년을 연락하지 않아도 서로의 삶에 여전히 진심일 수 있고, 그 마음은 따로 ‘관리’ 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은 내 관계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나는 내가 관리하지 못한 수많은 연락처보다, 가끔이라도 마음이 닿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 더 집중하게 되었다. ‘지속’보다는 ‘진심’을 중심에 두게 되었고, 그 결과 관계는 오히려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졌다.

관계는 서로의 공간을 나누는 일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인간관계를 ‘같이 사는 집’에 비유하게 되었다. 매일 모든 방을 점검하고 창문을 닦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문을 열고 마주 앉아 마음을 나누는 공간. 억지로 모든 방을 환하게 밝힐 필요는 없었다. 때로는 어두운 구석이 있어도, 그 어둠까지 이해해 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깊은 관계였다.

친밀함은 강요할 수 없고, 진심은 계산으로 만들 수 없다. 함께함은 곧, 서로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과정이다. 연락의 빈도가 아닌, 마음의 밀도로 관계를 재는 법을 배운 후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부담 없이 만나는 사람, 굳이 이유를 만들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인간관계’라는 단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나 스스로에 대한 시선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나의 진심과 존재 자체로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 변화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해졌고, 억지스러운 관리가 사라지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내 곁에 남았다.

결론: 관계는 기록이 아닌 흐름이다

인간관계는 일기장처럼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흐르게 두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억지로 닿으려 하기보다 가만히 흘러가며 서로의 물결을 느끼는 관계야말로 오래 지속된다. 이제 나는 연락의 주기나 만남의 횟수보다는, 함께할 때의 공기와 표정을 기억한다.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어떤 기술이나 전략보다 오래 남는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는 대신, 관계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함께 웃고, 함께 침묵하고, 필요할 땐 곁을 내어주는 것. 그 단순한 진심이 인간관계를 더 깊고 넓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관리’의 대상이 아닌, 서로를 알아가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 인간관계를 수첩이 아니라, 기억 속 따뜻한 감정들로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연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관계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다. 숫자나 빈도로 평가하지 않고, 진심과 존재감으로 관계를 대할 때 비로소 깊은 연결이 시작된다. 억지보다 자연스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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